럼펌 2022. 12. 10. 11:58

과거는 불멸한다.

현재는 필멸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눈 앞의 소녀를 바라본다. 습관적인 미소를 띄운 채로, 그저 지그시 관조하듯이. 그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 심장 안에서 무언가 울렁이는 감정이 거대하게 솟구쳐 오른다. 그는 구둣발로 그것을 짓누른다. 한 켠으로 치워버린다. 그러자 도로 평온이 찾아온다. 지금껏 그의 표정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다.

 

"내 욕망이 뭔지 알고 싶은 게 욕망일까."

 

동의를 표하듯 자문하면서도 싱클레어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싱클레어. 시간을 벌기 위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들자, 소녀의 눈이 시야에 재차 들어온다. 은은한 달 같은 눈이다. 한없이 높은 곳을 지향하지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다른 이를 찍어눌러 최고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최고를 지향하는 이들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자신을 깎아낼 수 있는 자는 타인 또한 꺾어낼 수 있다 완벽이란 무정한 것이다 저 눈도 변하겠지 어른들 특유의 잔인함을 학습하게 되겠지-

 

아냐.

 

그는 고삐 풀린 생각들을 주워담는다. 동생을 꼭 안아 위로하던 어제의 당신을 떠올린다. 미래를 떠올리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어지기에, 그는 생각을 깎아내어 현재에 머물러야 했다.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경을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과거는 불멸한다. 현재는 필멸한다. 그리고 미래는.

 

저 애는 언젠가 파 쇨을 갈망하게 되겠지.

 

마음 속에 울리는 속삭임을 묻기 위해 한층 더 큰 헛기침을 내고 고개를 모로 흔든다.

 

"네가 욕망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 그게 널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하지만 태양 너무 가까이 날아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루스처럼은 되지 마. 나도 파 쇨보다 파 드 되를 좋아하는 네가 좋아.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위대한 발레리나가 되고자 하는 너도 좋아. 하지만 마리안, (-그는 프리마베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일 누가 너를 앞지르거나, 네가 발목을 접지르거나, 어떤 불의의 불운한 일이 생겨 네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싱클레어는 눈을 감는다. 아주 먼 미래의 메아리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별개로 나는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 그러니 욕망 또한 하지 말아야겠지. 정확히 말할게. 나는 단순히 내 욕망을 모르는 게 아니야. 나는 내 욕망을 영원히 모르길 바라고, 그게 내 유일한 욕망이야. 내가 욕망을 알게 되길 네가 바란다면 그 소망은 이루어 줄 수 없어."

 

너와 나는 완전히 달라, 마리안 프리마베라. 너는 욕망에 차있고 위로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러길 거부하고 땅에 단단한 뿌리를 박아넣을 뿐이야. 완벽하게 굳건해지는 것. 비우고 비워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아버지에게 부응하는 방식이야.

 

이게 나의 삶이야, 마리안.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