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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rdinary Love Song

럼펌 2023. 8. 2. 23:25

 

범상한 사랑 노래

쥬디트 A. 노블 x 루비 Z. 비틀우드

 

 

 

"락스타 루비 비틀우드, 노블 상원의원의 딸과 동거를 시작하다!" 

 

루비 비틀우드는 언행이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지면을 강타하고 스캔들이 영국 전역을 휩쓸자 '친구끼리 뭐 어때서! 파파라치 따위, 백 명이고 천 명이고 몰려오라 그래!' 라며 떵떵거리던 기세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비는 쥬디트를 신경쓰는 눈치였다. 어딜 가든 지긋지긋하게 뒤를 따라붙는 황색 언론이란 쥬디트에게 달갑잖은 경험일 테니까.

 

그리하여 매주 금요일 밤 예정되어 있던 두 사람의 무비 나이트는 영화관에서 집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팝콘은 반원형 유리 그릇에 수북히 담겨 있다. 구미를 자극하는 버터 냄새를 맡으며 루비는 집에서 단둘이 쥬디트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차게 식은 물방울이 표면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맥주병을 부딪힌다. 웃고, 떠든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주로 루비가 조잘거리고 쥬디트가 한 번씩 응하는 형태였으나, 어쨌든 둘 사이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편안한 공기가 흐른다. 비밀은 없다. 속임수도 없다. 따라잡아야 할 10년의 세월, 둘 사이에 있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그 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대화는 조금씩 뜸해진다.

 

가게 주인이 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한 걸까, 추천받아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는 정석적인 로맨스 영화를 담고 있었다. 이거 한 5년 전쯤 개봉한 거 아냐? 구닥다리네. 종종 밴드 멤버들과 영화를 빌려 보곤 했던 루비는 속으로 5점 만점에 2.5점이라는 박한 평가를 내리고, 쥬디트 쪽으로 흘금흘금 시선을 던진다.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긴 양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군인. 영화의 파르스름한 빛이 얼굴에 애수를 더해준다. 늘 골이 파여있던 미간은 오늘도 다를 게 없었으나, 부상당한 한쪽 눈을 가리며 내려온 앞머리- 루비는 문득 그것을 걷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간만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가... ...

 

루비는 당황하여 귀를 만지작거린다. 무더운 여름날인데 귀부터 목덜미가 홧홧하니 뜨겁다. 쥬디트가 알면 또 '어디 아픈건 아닌가?' 하고 걱정스레 물어올 테니 들키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겨우 태연을 가장한다.

 

영화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클라이막스. 두 주인공은 빗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입맞추고, 격정적인 사랑의 언어를 토해낸다. 늘 낯간지럽게만 느껴졌던 그 장면이 오늘따라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쥬디트도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라 루비는 더더욱 영문을 알 수 없어졌다.

 

쥬디트가 먼저 입을 연다. 자조적인 목소리다. "나는 저런 사랑은 평생 못해볼 것 같군."

 

아하, 그제서야 루비 비틀우드의 의문이 조금 풀린다. 이 순간은 쥬디트가 완벽한 배우자, 완벽한 인생을 만들어 자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 그 대화의 연장선이다. 그린듯이 완벽한 두 주인공의 입맞춤을 보며 쥬디는 제 삶을 반추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영화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루비는 짧게 반성한다.

 

그리고 뒤이어 올라오는 것은 오기. 아마도 술기운에 힘입어, 루비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곤 짓궂게 웃는다.

 

"헹.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연애 상대로서 좋은 편은 아니라."

"그러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냐구. 난 너랑 사귀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시점에 쥬디트는 짧게 사레가 들린다. 콜록콜록, 어깨를 들썩이다 맥주병을 내려놓고 루비를 돌아보는 그의 미간이 한층 더 깊게 패였다.

 

"너-"

 

농담하지 말라든가, 놀리는 건 그만두라든가. 그런 류의 말이 이어질 예정이었겠지. 그러나 쥬디트 노블이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끝을 맺지 못한다.

 

루비 비틀우드는 불쑥 몸을 내밀어 쥬디의 입술을 제 입술로 막는다.

 

쥬디는 놀라 움직이지 못한다.

 

어른이 된 두 사람의 서툰 입맞춤에선 무더운 여름날과, 찬 맥주와, 조종간의 기름, 향초, 그리고 약간의 버터 향이 났다. 크레딧이 올라가며 까맣게 물든 텔레비전 화면에선 범상한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 그 노래는 이 밤 처음으로 그들을 위해 존재했다.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훗날 이 순간을 회상했을 때, 루비는 멋쩍은 얼굴로 뒷목을 문지르며 다소 충동적인 선택이었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