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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펌 2023. 1. 23. 19:15

신기루를 쫓고 있었다.

 

목이 타들어가는 동안 소년은 생각했다.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에 사막이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을 했다고. 마른 혀를 축이지도 못하는 물 한 방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저 먼 하늘 별천지를 향해 여행을 떠날 무렵, 소년은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 신기루는 정말로 아름다웠어. 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상엔 때로 바보가 되어도 좋은 일들이 있는 법이다.

 

 

'아이먼 클라이브 휫룩.'

 

클라이브의 라이Lie. 줄곧 의심하지 않았다 한다면 거짓말이다. 사람들이란 주는 만큼 받기를 바라는 존재.  제아무리 상냥한 사람이라도 어찌 사랑받길 바라지 않겠는가? 자신이 애정을 쏟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싱클레어 본인조차도 그 법칙에서 자유하진 못했고, 세상에 배반당하는 것이 두려워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예외가 있었다.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택하는 인간이.

 

'바보네.'

 

솔직한 감상은 그러했다. 앳된 아이의 치기이자 천진함이 아니겠느냐고. 그때는 모두 어려서, 로넨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즐거운 미래를 이야기했고, 밀스톤은 선심 쓰듯 영시를 읊어줄 줄 알았으며, 본인 또한 곱스톤 구슬을 굴리며 즐거워할 줄 알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쇠락과 종말을 두려워하는 아이는 자신 말고 또 누가 있었겠는가.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내 친구가 될 수 없으리란 통보에 당신이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곁에 있을게요. 그런 말 또한 허울 좋은 자신감일 뿐. 예외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아니겠는가. 적당히 웃으며 어울려주다 보면 언젠간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되겠지. 그리고 자신을 보다 아껴줄 사람들에게로 떠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멋대로 실망하거나 책망한들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다.

 

그러나 아이먼 클라이브 휫룩은 계속 그곳에 있었다.

 

'어딘가 고장난 걸지도 몰라.'

 

열다섯이 된 싱클레어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이것 또한 본인이 스스로 사고하여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아라크네가 지나가듯 이야기하는 것을 주워들었을 뿐. 어차피 당신은 절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으시잖아요, 그렇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현실 파악에 약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책망 한 번 하지 않는다.

 

자기파괴적인 타입인가? 그러고 보면 본인의 약점을 보란듯이 드러내고 다니긴 했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족한다는 래번클로 기숙사에 배정되고서도 꽤 오랜 시간 절절매며 낙심하기도 했고. 혼란을 느낀 그는 이해의 단초를 찾아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기숙사 배정식에 이를 때까지. 모자는 아이먼을 가리켜 속이 단단히 꼬인 인간이라고 했었지. 우리 기숙사의... 그... 누구더라, 그 애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먼의 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녔고. 어쩌면 기이한 가정 환경이 그 애를 망쳐놓은 건지도 몰라. 자기를 상처입히길 바라고 있는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신경쓰고 있는 거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면, 거짓말인가?'

 

싱클레어는 기어코 내려가기로 한다. 가장 놀랍지 않은 결론에 닿을 때까지. 애시당초 당신이란 사람이 누구였는지 한 번이라도 안 적 있는지 의심해 보자. 네가 나보다 연기에 능한 인간이었을 경우. 열등을 가장하며 즐거워하고, 모두를 손바닥에 올려둔 채 평범을 꾸며내고 있었다면. 그래서 단 한 번도 진심이었던 적 없고, 내 환심을 사려는 것도 그저 유흥의 일환이었다면. 네 보가트가 특이하기도 했고, 최근 들어 보이는 여유도 기묘하고, 지팡이만큼이나 사람이 중간에 바뀐 것 같기도 했고, 근거를 찾으려 들자면 많아.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이다. 미리 상상해 두면 배신당할 일도 없으니까. 믿음만 주지 않기로 한다면... ...

 

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책상 위에 오렌지색 등불이 어른거린다.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턱을 괸 채로 벽에 붙은 종이들을 감상한다. 당신이 자신을 관찰하며 그려준 그림들이다. 네 눈엔 네가 이렇게 보이는구나. 그 생각의 끝엔 더이상 의심도, 혼란도, 불확실함도 없다. 그는 단조로운 감정의 평야에 서서 그간의 7년을 곱씹는다. 깨달음은 어렴풋이 찾아온다.

 

거짓말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신기루여도 상관없다. 네 웃음은 이미 내게 익숙해졌고, 머리를 간간이 쓰다듬어 주는 손길조차 생각날 것 같으니. 그 모든 행동이 실재했는데 의도가 중요할 리 있겠는가.

 

내가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슬픔은 네 얼굴을 하고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네가 나를 전혀 아끼지 않는대도 상관없다. 나 또한 너를 아낀 적 없으니. 다만 한 가지- 나라는 인간의 공허를 이해했으면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이끌려 한 건 너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이 사실을 직시했다는 것이 네가 곧 사라질 전조처럼 느껴져서. 시침 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미완으로 남겨두었던 이야기가 꽉 닫힌 결말로 나아가고 있었다... ...

 

다시 한 번 너울대는 인간의 마음을 죽인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고개를 돌린다. "내가 나아갈 만큼의 시간이, 이 사회에 남아 있다면 말이지." 일부러 주제를 돌린 뒤 옅은 웃음을 짓는다. 어느새 잡아뺀 손을 늘어뜨린다.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우리 둘 사이에 남겨둔 채로.

 

"그러니까, 졸업하면 편지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