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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설

 

 

 

세계란 녹이 낀 어항이다.

 

어항의 둥근 유리와 창백한 물 너머로 눈이 마주친다. 시야가 일렁인다. 둥근 눈의 인간은 납작한 눈의 금붕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로 보진 못한다. 왜곡되고 비틀린 빛으론 평생 진실에 가닿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름을 부른다. 저건 금붕어야. 그 세 글자에 본질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욱여넣고 안다고 착각하길 택한다.

 

 

너는 멍청하지 않아, 라이 휫룩.

 

 

네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해: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야. 우리의 인지는 피상적이고 표면에 불과해.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이해하지 못함에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덴 일종의 상냥한 아름다움이 있어. 지금 네가 내게 연이어 캐묻는 것처럼.

 

나는 라이 휫룩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네가 민들레 같은 색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걸 알고, 눈물이 많다는 걸 알고, 의외로 강단있게 말할 줄 안다는 걸 알아. 자신이 잘난 구석 하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것도 알아. (네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도.) 하지만 네 심장에 진정 놓인 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 모자가 네 머릿속에서 본 게 무엇일지, 너를 래번클로에 넣은 이유는 무엇일지 알지 못하고, 솔직히 말해서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어차피 이해란 영원히 도달 불가능한 목표니까.

 

난 너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어, 라이. 사람이란 이런 경우엔 서로 도울 수가 없어. 나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든. 너도 마찬가지야. 일견 무능하고 소심해보이는 네 아래에 감추어진 진짜 자신은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내가 물질도, 마음도 줄 수 없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야. 물질을 주고받아선 영원히 진실된 관계에 다가갈 수 없어. 하지만 이해의 범주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섣불리 마음을 주겠다 약속할 수 없어. 믿음은 변하고, 우정은 배신하고, 진심은 변질되어 버려. 나는 이것을 절망이 아닌 사실로써 알아.

 

그럼에도 너희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나를 즐겁게 해.

 

너희들의 곁에 있을 거야. 현재를 함께하겠어. 하지만 그건 마음을 준다와 별개의 문재야. 이걸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부르겠지. 그럴 수도 있어. 내가 나쁜 놈일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 나는 꽤나 정이 많은 사람인걸. 그냥...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나면, 어떤 것도 예전같지 않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그런데도 너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나와,

네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