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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도 없고 모든 곳에 있는.

그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냄새맡을 수 없어.

그건 별 너머 있고, 언덕 아래 누워 있어.

제일 먼저 오고 가장 나중에 따라가지.

인생을 끝내고, 웃음을 죽인다.

이건 뭐지?

 

어둠.

 

뭐, 거창하게 말했지만-...

 

청년은 집배원이었다. 어디서도 볼 수 있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집배원과 어둠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어디 있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명 마법이 따로 필요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성 뭉고 병원에 있었다.

머글 세계에 있었다.

호그스미드에 있었다.

녹턴 앨리에 있었다.

 

안녕, 아라크네. 안녕, 루시엘. 안녕, 루. 안녕, 디론스. 안녕, 스프링.

 

어디를 가든 똑같았다. 사람들은 전형적인 집배원 차림을 한 그를 흘긋 쳐다본 후엔 관심을 옮겼다. 물론 들어가기 까다로운 곳도 존재했다. 호그와트라든가, 마법부라든가. 다행히도 호그와트 학생들이나 마법부 직원들은 여전히 부엉이 우체국에 다수의 편지를 위탁하곤 했다. 심지어 몇몇 덜떨어진 죽음을 먹는 자들은 일상적으로 소포나 편지를 맡겼다. 그로서는 감사한 노릇이다.

 

안녕, 맬리셔스의 추종자들. 안녕, 메리의 직장 동료들.

 

청년은 집배원이었다. 부엉이가 옮길 수 없는 물건은 그가 옮겼고, 갈 수 없는 곳에는 그가 갔다.

 

"정말 괜찮겠어? 나름 기피 대상인 행선지인데. 저번에도 네가 떠맡았잖아?"

"하하, 어쩔 수 없죠. 제가 여기서 제일 젊잖아요. 선배님처럼 연로하신 분께서 디멘터 근처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어떻게 되는데?"

"뼈가 삭을 걸요."

"너 이 자식!"

 

그리고 '갈 수 없는 곳'이라 함은 아즈카반도 포함되는지라.

 

 

 

철썩, 철썩.

 

바다의 색마저 디멘터가 빼앗아간 걸까, 청회색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새하얀 포말로 부서졌다. 의미심장하게 끼익대는 소리를 내며 해안가에 안착한 배 위에서 노인은 노에 기댔다.

 

"하여간, 언제고 기분 나쁜 장소라니까.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익숙하게 내린 청년은 탑을 올려다본다. 예전에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가두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안으로 걸음한다. 간수 없는 감옥에 집배원이 드나들게 된 것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서서히 권력을 넓혀가던 무렵이었다. 그때쯤엔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에 갇혀있던 죄수들도 바깥의 친족들과 자유로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었는데, 아즈카반이 사실상 정치범- 즉, 반순혈주의자- 수용소가 된 뒤에도 그 사실은 여전했다. 한 달에 한 번, 집배원은 방문해 편지와 신문 따위를 전해주고 돌아간다.

 

피부에 엉겨오는 눅눅하고 기분나쁜 냉기를 지나, 걷고 또 걸어서... ... 횃불이 일렁이며 그가 걷는 자리마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이따금 디멘터가 뻥 뚫린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으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은 오래 전에 버렸다.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면, 저들은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

 

편지를 하나, 둘 나눠주던 그의 걸음이 한 곳에서 멈춘다. 집배원은 창살 너머의 어둠을 응시하며 부드럽게 호명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불꽃처럼."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오늘밤 지더라도 필 꽃처럼."

 

답이 돌아온다. 집배원은 신문을 넘긴다. 종이를 빠르게 넘기며 암호로 적힌 정보를 빨아들인 죄수는- 이윽고, 조금 더 편한 자세로 걸터앉으며 묻는다. 툭.

 

"가져온 건 이것 뿐이야, 시클라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