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 시클라멘은 무결하지 않다.
열다섯의 나이. 그는 종종 권태로운 낯으로 순혈주의자들의 모임 한 켠에 껴있곤 했다. 이제는 거의 잊혀진 과거다. 또래들은 저열한 농담을 뱉으며 부러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고, 꼭 승인이라도 구하듯 그를 향해 눈짓했다. 그가 소리내어 동의를 표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자리에 서있는 것 자체가 그 분위기를 향한 동조였다.
어째서 그들은 그 자리에 싱클레어 시클라멘을 허용하고, 메리 우드워드는 허용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가 남자였기 때문에. 그의 눈빛이 상대로 하여금 평가받는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무거운 동시에 신경을 거스를 만큼 위협적이진 않아서. 그의 콧잔등에 주근깨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 겨우 그 정도의 이유로.) 그가 퀴디치 주장이어서. 대놓고 배척하기에는 친구가 많아 보인 까닭에. 비록 그가 제아무리 가족처럼 대한다 자부했더라도 그에겐 호라가 있었고, 법적으로 그는 집요정을 보유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시클라멘이라는 이름은- 비록 어떤 순혈들에겐 오래된 원한을 불러일으켰고, 잡종이라는 빈정거림이 따라붙긴 했어도- 우드워드보다 '마법사'로 잘 알려져 있던 탓에. (이 이유가 가장 컸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그의 힘이 아니었다. 설령 그가 죽을만큼 노력해 얻어낸 자리라 한들 그게 차별을 면할 이유가 되어선 안 됐다. 그의 능력으로 차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반대로 말해 '뒤처진 사람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 또한 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부정할 수 없게도 그의 유년기는 증명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는 집요정에게서 무한한 애정을 받았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적 또한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호의를 얻어내려 노력했고, 그가 딱히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아도 곁에 모여들곤 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수치를 당하는 무력한 경험은 전무했다.
당신은 그 반대였다. 아비 없는 아이라는 건 당신에게 가서야 비로소 낙인이 되었다. 수 년간 머글 태생으로 살아오던 아이가 어느날 자신을 혼혈로 주장한다 해서 모진 시선이 누그러지진 않았다. 세상은 당신을 폴란드 계집애로 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당신은 늘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불친절한 세계에서 이상은 사치다. 피해자는- 때로 그 피해자성으로 인해- 가해자가 되며, 체제의 패자는 악에 받쳐 차별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메리 우드워드가 악을 행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 당신은 동정의 여지를 넘어 멀리도 갔다. 지난 생의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이러한 교차성을 어렴풋이 이해했으나 또한 거북하게 여겼다. 가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윤리적 맥락을 심도 있게 고찰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당신에 대한 생각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불사조 기사단은 선이고,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악이다. 그곳에는 어떤 변명의 소지도 없다.'
지불 유예Moratorium였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의 생을 넘어 이곳에 도달했다. 메데이아 교수의 사무실. 찻물의 향기와 오래된 마법약 재료들의 냄새, 빼곡히 책장을 채운 학살의 증거가 공존하는 장소. 그는 드물게 반듯한 자세로 당신의 건너편에 앉는다. 그리고 시선을 맞춘다. 입은 무거운 일 자(一字)를 그리고 있고 미간은 살짝 좁혀진 채다. 당신들이 아는 실없는 청년보단 그의 조부를 닮은 낯으로... ...
"나는 서류를 조작하는 일을 담당했어."
당신에게 밀린 채무를 지불한다.
"네가 절망을 선고하는 법정에 모든 머글 태생이 끌려간 건 아니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마법 정부는 보다 '온건하다'고 일컬어지는 정책들을 펼쳤지. 협조적으로 나선다면 머글 태생이 취직에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고 했어. 하지만 그걸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직장 안에서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사회는 보다 순수한 피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었거든. 불이익은 거대한 장벽보다는 자잘한 돌부리의 형태로 나타났어. 누가 승진할 것이냐. 문제의 소지가 있을 때 누가 법정에 먼저 끌려갈 것이냐, 따위의..."
여기서 바보같은 농담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생의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희망을 이야기하고, 긍지를 이야기하고, 불굴의 정신에 대한 뜬소리로 분위기를 무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는 더 밀어붙이지 못한다. 억압자의 발언은 그 자체로 죄악이 되니까. 그는 계속해서 무결한 위치에 있을 수 있고, 불편한 생각을 피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가치를 떠들어 댐으로써 친구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짓 환상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대놓고 불의한 일들, 법적으로 맞설 수 있는 것들은 비앙카 블룸의 소관이었어. 회색 지대에 있는 건 브로커인 나의 영역이었지. 일주일에도 서너 명의 머글 태생이 내 손끝에서 혼혈이 되었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래선 안 되었다. 열다섯의 그가 범한 잘못이 제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간에, 그는 한때 메리 우드워드가 될 수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싱클레어 시클라멘이 순혈주의자의 모임에서 속으로 조소했듯이 우드워드 의장은 자신이 이끄는 얼간이들을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때로 타자화는 면죄권과 혼동된다. 평범하게 악을 행하는 자들이 빠지기 가장 쉬운 함정이다.
당신은 함정에 빠졌고, 그는 보다 운이 좋았다. 그 차이 또한 그가 지불해야 하는 채무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경우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보았어."
그리하여 그는 나직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회피하거나 논제를 흐리는 일 없이, 자신이 본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그는 존재하지 않게 된 이 땅 모든 비극의 전령이다. 사소한 좌절을 겪은 이부터 공권력에 가족을 잃고 비통해한 자들을 이야기하자. 당신을 향해 골목골목 쏟아지던 저주의 속삭임과 술집 바닥에 뱉어지던 가래침을 논하자. 가끔가다 조작된 서류가 발각되어 당신 앞으로 끌려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때, 녹턴 앨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포의 공기를 불러오자.
이 증언은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다. 볼드모트라는 거대한 악이 문간에 도사리고 있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 꺼내놓기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우리는 무엇이든 내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일은 항상 오늘이 되고 따라서 헤어날 길은 없다. 상환의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어야 한다. 내일을 오늘로 만드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자격을 얻으니까.
"너는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그럴 수 있는 종류의 죄가 아니니까."
싱클레어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속삭인다. 당신의 손에 제 손을 포개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너를 용서해줄 사람은 여기 없어. 네가 사죄할 대상은 존재하지 않아. 매 순간 이 모든 걸 꿈으로 치부하고 도망치고 싶은 욕망이 네게 손짓할 거야. 핑계는 넘쳐날 거고, 정말 편리하게도 네 이름마저 다르지. 언제라도 메리 우드워드와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를 구분지을 수 있게끔."
사람들은 그가 마냥 천진해졌다고, 이전 생의 보상을 거두러 왔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즐거움은 언제나 고통과 손을 잡고 오는 게 아니었던가? 우리는 고통을 통해 실재實在를 이해하고 어른이 되지 않던가? 보가트의 이름을 깨닫는 때가 그에겐 패트로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는 네가 창조한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는 네 모습은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겠지. 증인이 서른 명 남짓 뿐인 없어진 미래... ... 너는 오히려 너와 같은 입장이었던 아이들을 함께 감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중인지도 몰라."
그는 당신을 친구로 여겼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고, 솔직히 말해 도망치더라도 응원해줄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지금 읊는 선고문은 그에게도 고통이 된다.
그가 함께 해야 할 고통이다.
"네가 어떻게 밀린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지, 이게 옳은 방법인지는 나조차도 몰라. 하지만 약속할게. 네 행동에는 의미가 없지 않아. 나는 너의 선택을 이해해. 나, 싱클레어 시클라멘은 네가 도망치려 할 때마다 책임을 상기시킬 거고,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할 거고, 네게 희생당했던 이들의 이름을 짚어줄 거야. 그리고 보다 나은 방법이 있는지 함께 생각할 거야... ... 이제는 그럴 준비가 됐으니까... ..."
목소리의 끝이 흐려진다. 채광이 잘 드는 커다란 창문. 방 안을 따뜻하게 밝히는 불들. 그 아래에 앉은 채 잠시간 눈을 감고 있던 청년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짐짓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그러니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