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topping me, breaking barriers
I keep on crushing it till I am done
I didn't get here by accident
No, I've been gunning it since I was young
"그러면 다음 무대를 감상하기 전, 영국 최고의 록스타와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루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지요?"
객석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 루비 비틀우드는 삐뚜름한 선글라스 너머로 진행자를 힐끗 바라보더니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간다.
"칠리 소스를 뿌린 브라우니."
"이럴 수가! 진담으로 하신 말이 맞나요?"
"왜, 불만 있어? 욕설 롹킹한 맛이다, 이 험한말들아!"
씩 웃으며 귓가에 손을 가져가자 야유의 파도가 한 차례 객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의 쇼맨십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던 진행자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 흥분한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좋아요, 좋아. 이상형은 있나요?"
"나보다 성격 나쁜 사람."
"영국에서 찾아보기 쉽지는 않겠군요..."
"뭐 임마?"
"농담입니다, 농담. 그러면 루비- 이번 질문은 좀 진지할지 몰라요! 많은 팬분들이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입니다. 소아암 생존자라고요?"
객석은 한 순간 조용해진다. 루비는 선글라스 너머에서 눈을 깜빡인다. 이어 짧은 헛기침으로 목을 푼다.
"어."
"지금은 건강한 게 맞나요?"
"완치 상태냐고 묻는다면, 맞아. 요즘은 1년에 1번 MRI를 찍으러 병원에 다닐 뿐이지. 전에도 아팠던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다구. 9살이었던가,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진단해 주더군. 병명이- 뭐였지, 꺽다리? 미안. 내가 가사 외엔 잘 못 외우는 빡대가리라."
고개를 뒤로 비스듬히 기울이자, '꺽다리'- 루비가 붙인 밴드 베이시스트의 별명이었다- 는 익숙하게 손바닥에 무언가를 써서 보여준다. 글씨를 본 루비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 배아세포종이었지.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어. 5년 생존률 91%, 완치율 85%. 해볼 만 한 승부잖아? 사실 그땐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 나이였고 말이야. 난 씩씩하고 버르장머리 없이 그 시간을 이겨냈지. 고모는... 많이 울었어. 나중에 듣자 하니, 그때 받은 치료가 만만한 건 아니었더라."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게 그런 이유였군요!"
"그건 패션이라고, 멍청아." 객석을 한 차례 웃음소리가 휩쓸고 지나간다. 루비는 사람들이 조용해지길 기다린 후 씩 웃는다. "맞아. 눈부심이 좀 심해서. 어쨌든! 나는 내 질환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았지. 16살 때까진 말이야."
"16살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망할 병이 재발한 거야! 그때 얼마나 억울해 미쳤을지 알아? 다른 애들은 멀쩡하게 10년, 20년 뒤를 바라보는데, 나는 생존이 확률의 문제라니. 막말로 생존율이 91%라 해도 100명 중 9명은 죽지. 그 9명에겐 세상이 끝나는 경험이야. 무(無). Nada. 쫑나는 거라고.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당사자에겐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야."
생수 한 모금을 들이킨 루비 비틀우드는 눈을 굴린다.
"하지만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생각은 그런 게 아니었어."
"그럼 뭐였나요, 루비?"
"프롬에 대머리로 가야 한다는 게 가장 쪽팔렸지, 물론!"
객석에서 폭발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뒤에 서있는 드러머까지 쿡쿡 웃기 시작했다. 루비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객석을 향해 마이크로 삿대질을 했다.
"웃겨? 웃겨!? 이봐, 너희가 상처입은 17살 소녀의 마음을 알아? 결국 가발 쓰고 다녀왔다고, 이 자식들아!"
"반응을 보아하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 보네요, 루비!"
"아니거든! 아오! 어쨌든! 요지는 그거야."
루비는 방송국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가 말을 건네는 대상이 단순한 관객들이 아니라는 건 명백했다.
"생각 이상으로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화나게 해. 그때 내 성질머리를 받아준 녀석들에겐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만, 성질을 낸 것까지 후회하진 않아. 나는 불안하고, 외롭고, 초조하고, 억울했으니까. 하지만 이걸 봐. 졸업여행 때 들른 휴양지 펍에서 한바탕 싸운 인연으로 밴드를 결성하고... 지금은 정상에 서있지.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너희도 그럴 거야."
객석은 한 순간 아주 고요했다. 루비 비틀우드는 그 침묵을 즐기다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뭘 초상집 분위기야? 살아남았다니까?! 어쨌든! 내가 실력도 부족한 주제에 사연팔이하니 뭐니 하는 놈들이 있는데, 그렇게 억울하면 무대 위로 올라와서 직접 시비를 걸도록 해. 내게 처음 음악을 가르쳐 준 학창시절 룸메이트의 랩이나 인용해 볼까."
루비의 눈짓에 드러머는 곧바로 스틱을 고쳐 잡고는 비트를 넣어주기 시작했다. 루비는 손짓 하나로 관객을 쥐락펴락 하며 랩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마법을 부렸어.
영재였지.
모르간부터 살라자르, 멀린, 아버지
선배였지!
관객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랩은 루비 비틀우드가 공연 시작 전마다 한 번씩 갈겨주는 것으로, 해-5 (*편집자 주: '해체 5분 전'이라는 뜻으로, 루비가 보컬로 속해있는 얼터내티브 록 밴드의 이름이다.) 의 팬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열광하는 레버와도 같았다. 살라자르가 뭐고 멀린이 뭔지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그저 루비가 매번 언급하는 '학창시절 룸메이트'가 어떤 래퍼일지 궁금해할 뿐.
물론, 머글 세계의 유명 가수 따위가 살라자르의 이름을 동네 개처럼 불러대는 행태는 누군가의 분노를 사긴 했다. 그 누군가는 지금 폭발 마법으로 저 건방진 혼혈 마녀와 관객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겠다는 집념으로 무대 뒤쪽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오고 있었으나 루비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 그래! 오늘 반응 좋아! 그러면 나가는 길에 티셔츠, 에코백, 많이들 사 가라고. 내가 늘 하는 말 알지? 이 공연의 수익금 중 내 몫은 전부 소아암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된다. 그리고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인간관계를 죽을 쒔든, 꼴통이든, 멍청이든, 길을 잃거나 바닥을 쳤더라도. 돌아와. 약속대로 기다리고 있어. 그럼- 시작해볼까!"
한껏 흥이 오른 루비가 팔을 휘적거리자 무대의 불이 꺼졌다. 첫 번째 곡은 어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밴드의 국룰이었다. 루비 비틀우드는 드러머 뒤쪽에 놓인 스피커 위로 달려올라갔고- 드러머는 쟤 또 저러네 싶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이 순간에 대해 루비가 두고두고 억울하단 듯이 한 말이지만, 그것은 루비의 잘못이 아니라 악에 받힌 채 무대에 멋대로 난입한 순혈주의자 테러리스트의 잘못이었음에 틀림없다.
무대에 불이 켜졌다. 루비는 힘껏 열창하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순혈주의자는 어둠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감히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명예를 더럽히다니, 네 비루한 목숨을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내주마!' 따위의 진부한 대사를 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루비는- 아까 말했다시피- 이미 허공에 떠있었고, 순혈주의자의 머리 위에 있었고, 둘의 당황한 시선은 중간에서 0.5초 가량 마주쳤던 것이다.
- 망한 것 같지?
- 응.
0.5초 뒤, 구두굽과 금체인 포함 54kg의 무게가 멀린의 징벌처럼 순혈주의자의 코뼈 위에 내려앉았다.
루비는 드럼 소리 너머로 선명한 '뚜두둑' 소리를 들었다고 맹세할 수도 있었다!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코뼈가 박살난 순혈주의자 테러리스트는 그대로 코에서 피를 뿜으며 기절했고, 루비는 잠시 당황하며 무대에 서있었다. 뒤늦게 혼동 마법에서 풀려난 경비들이 무대 뒤쪽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는 것을 곁눈질로 본다. 다시 망토를 두른 채 기절한 남자를 본다. 그의 손에서 데굴 굴러떨어지는 지팡이를 보자, 루비는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순발력으로 상황을 직감한다.
그는 빠르게 당황을 추스르고 발을 한 번 더 쾅 굴러 순혈주의자의 지팡이를 부러뜨린다. 그와 동시에 기타와 베이스와 키보드와 드럼이 일제히 살아난다. 루비는 경비들이 알아서 개쪽을 당한 마법사를 끌어내게 둔 채 객석을 향해 열창을 시작했다. 그날의 공연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
"그렇게 해서 저쪽에게 찍혔는데. 혹시 불사조 기사단에 가입할 수 있을까?"
"너... 바보야?"
"그런 얘기 많이 듣지. 하지만 그날의 공연은 스껄했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