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발은 과녁에 명중하나 마지막 1발은 나의 뜻대로 날아가리니. 유혹에 약한 사수여, 마탄을 장전하라. 우리 곧 지옥에서 재회하리라.
| 오페라 '마탄의 사수' 중
* 소재주의: 집단 폭행, 욕설
퍼억. 묵직한 타격이 뒤통수를 후리고 지나가자 그레이엄 카터는 제자리에서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제아무리 기습적인 몽둥이질이라 한들 거대한 체구가 단번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고, 사내는 한 발을 지면에 박아넣더니 흉진 입꼬리를 위로 당겨 헛웃음을 지었다. 일순 까맣게 물들었던 시야가 가물거리며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수 초. 그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고 재수없는 비아냥이라도 던질 작정이었다. 한둘이 아닌 이들의 손에 떠밀려 바닥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너 때문에. 네가 우리 친구를 죽였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죽음을 먹는 자. 짐승을 도살하듯이 총을 들쳐메고 전쟁에 나갔어. 일말의 후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지켜봤다고.
균형을 잃었다. 등이 진흙투성이 바닥과 부딪히며 골목에 작은 먼지구름이 일었다. 가벼운 기침을 뱉어내는 그레이엄 카터의 낯에 짤막한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 적참나무 지팡이는 손이 닿지 않을 먼 곳으로 굴러가 버렸고, 양팔과 양다리는 두어 명씩 달려들어 있는 힘껏 내리누르고 있었다. 여섯, 일곱... 아홉 명인가. 작정했나 보네. 에럼펀트를 잡을 때도 이렇게 대인원을 끌고 가진 않는데. 그레이엄이 미간을 좁히더니 웃음기 어린 숨을 뱉어냈다. 그러한 반응을 무어라 해석했는지, 그의 가슴팍을 밟고 선 여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입 닥쳐."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리 대답하려는 순간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고, 지팡이 끝이 새하얀 빛으로 번득였다.
그레이엄 카터의 눈이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풀렸다. 백일몽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표정 역시 멍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두 팔은 간헐적인 저항마저 사라진 채로 바닥에 퍼질러져 움찔거리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사나운 짐승을 간신히 제압해낸 사냥꾼처럼 안도했다. 안도가 가신 뒤엔 괜스런 부아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자식! 무력해진 짐승을 향해 욕설이, 침이, 날것의 폭력이 날아들었다. 누군가는 그의 머리채를 잡더니 벽돌담에 몇 번이고 처박았다. 깨진 이마에서 새빨간 선혈이 눈썹과 코 사이의 고랑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레이엄은 희미한 소리를 냈다. 지독한 새끼, 얻어맞는데도 애원 한 번 하지 않는군. 주먹이 날아들었다. 얼굴이 반대편으로 휘꺽 돌아가자 두개골 안으로 말려올라간 눈알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겨우 정신이 돌아왔는지 그레이엄은 바닥에 피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부어오르기 시작한 뺨이 욱씬거렸다.
사람들은 그를 풍운아라 불렀다. 본디 풍운아란 좋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두각을 나타내는 자를 이르는 말. 그러나 그런 풍운아의 삶이 좋게 끝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언젠가 바람이 그치고 구름 또한 흩어지는 탓일 터다. 지금 이 순간 그의 행운이 다했다. 그리고 그가 여태 웃으며 간과해온 많은 것들이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
후회하는가?
전혀.
그레이엄은 잔뜩 얻어터진 얼굴로 시원스레 웃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고 주먹질로 그레이엄의 뼈를 마디마디 부러뜨렸다. 급기야 누군가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기도가 제 형태를 잃고 우그러졌다. 그레이엄의 발끝이 경직되며 가늘게 떨렸다. 머리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지자 눈이 재차 위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느린 교수형.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덜컹, 발밑의 의자가 모로 쓰러지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끝이다.